청소년 소설은 어떨까
우리 집 근처에 스마트도서관이 있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책 자판기라고나 할까. 많은 책이 있는 게 아닌 만큼 인기작 이거나 신작을 꽤 쉽게 접할 수 있어 좋다. 단점은 터치 화면에 보이는 표지만으로 책을 고를 수 있어 책의 크기나 책날개에 있는 책소개 등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겨울의 귤이 생각나 선택한 이 책을 대여하고 꺼내 봤을 때는 약간 실망스러웠다. 생각보다 얇고, 청소년 도서라는 점에서 유치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시 반납함에 넣을까 고민하다, 뒤표지에 쓰여있는 "의심은 타인을 향한 것이기도 했고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라는 본문 내용을 보고 그 마음이 궁금해 읽고 싶어졌다.
네 명의 친구들의 이야기
이 책은 다윤, 소란, 해인, 은지 이렇게 4명의 친구들의 따로 또 같이 한 학창 시절의 이야기이다.
다윤은 모범적이고 어른스러운 친구이다. 동생이 어렸을 때부터 아파 자기 할 일을 스스로 해왔고 엄마 아빠한테 좋은 딸이 되어야 했다. 공부도 잘해서 중학교 때 외고 진학을 권유받기도 한다. 그렇게 어른스럽고 너그러운 아이지만 사실은 외롭다. 그래서 외로움을 달래고자 남자친구를 사귀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 기특하지만 안타깝다.
"우울한 집안 사정 같은 건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마음과 누군가 먼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다윤 안에 뒤엉켜있었다." p200
소란에게는 유치원부터 친했던 친구 지아가 있다. 의지하는 친구 지아가 교육열이 높은 다난동으로 이사 가서 함께 하는 시간 줄었다. 엄마한테 우리도 이사 가자 했지만 상황이 녹록지는 않았다. 공부하느라 바쁜 지아와는 그렇게 멀어져 버렸다.
"소란은 무사하다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무사. 없을 무, 일사. 일 없음. 아무 일이 없음.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나 주기를 바라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어는 순간부터 아무 일 없기를 바라게 되었다. 두 감정 사이를 넘어오던 순간을 기억한다. 소란은 그때 자신이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p136
해인은 아빠와 동생의 식사를 차려주는 장녀이다. 아빠의 사업이 잘못돼 아파트에서 다세대주택으로 이사해 적응이 힘들고, 아빠의 생각 없는 언행이 불편하다. 아빠는 형편에 맞는 않는 자사고를 보내겠다고 무리하신다. 그래도 친한 친구 은지와 은지 가족에게 의지하고 위로받는다.
"제 인생 망치지 않았어요. 망쳐지지 않았어요, 아빠" p93
은지는 부모님이 이혼해 엄마와 외할머니와 살고 있다. 엄마는 뻔뻔하지만 은지는 엄마의 그런 점이 좋았고, 할머니는 한 없이 따뜻하다. 순수하고 착하지만 초등학교 때 친구에게 받은 상처가 크다.
"이미 거절당했던 제안을 바로 그 자리에서 망설이지도 쑥스러워하지도 않고 은지가 꺼냈다. 은지의 그런 면을 해인은 좋아했고 다윤은 신기해했고 소란은 부러워했다." p175
이야기는 각자 다른 환경과 상황을 가진 친구들이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는 약속을 하면서 시작됐다. 네 명의 친구들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을까?
"친구들과의 약속이 충동적이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었다. 진심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p169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다.
책을 읽고 난 지금은 책을 다시 반납할까 고민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청소년 권장도서는 왜 가볍고 유치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졌던 걸까. 그리고 왜 내가 공감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난 책을 읽으면서 완벽하게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밑줄 쳐야 하는 마음들이 너무나 많았다.
다윤을 보면 세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나 부모님 사랑을 받기 위해 내 할 일을 알아서 했던 게 생각났고, 소란의 소심하고 속 좁은 듯한 마음은 딱 내 마음 같아 제일 많은 공감이 됐었다.
청소년 소설이라 해서 꼭 발전하는 성장을 얘기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다양한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어쩌면 제일 중요한 성장이 아닐까.
초록색일 때 수확해서 혼자 익은 귤, 그리고 나무와 햇볕에서 끝까지 영양분을 받은 귤. 이미 가지를 잘린 후 제한된 양분만 가지고 덩치를 키우고 맛을 채우며 자라는 열매들이 있다. 나는, 그리고 너희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p161
비밀을 공유하는 일, 진심을 말하고 진심이라 믿는 일,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일. 소란은 아직도 이 모든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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